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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달

by 안 2022. 10. 21.

벚꽃도 그리 이쁘지도 않았고 거추장하게 나무 기둥만 굵었다. 한국의 벚꽃나무가 아니였다. 봄이 왔으니까 벚꽃나무 밑에서 사진을 찍어라는 너의 말에 어깨를 나누고 걷다 아무 생각 없이 나무 옆으로 가 포즈를 취해 봤다. 포즈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일자로 선 나의 모습을 너는 사진 두장을 연속으로 찍어줬다. 햇빛에 눈을 찡그린 체 헤아릴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네가 떠오른다. 봄이라고 하기엔 마냥 덥던 날씨와 우리 사이에 조용한 적막이 또 지금 나에게만 느껴진다. 겨울이 한순간에 봄이 되고 다시 갔다. 시간에 갇힌 체 느낀다. 또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더럽고 추잡한 악순환의 반복이다.

가끔 두렵다. 내가 허무하고 외로운 감정을 겪을 때 곱씹은 그 봄날들의 순간들이 너의 악함을 미화했다면? 네가 지은 표정이 사실 왜곡된 내 기억 때문에 그리 아름답게 내 마음에 한때 자리 잡았었던 것이라면? 사실 종종 두렵다. 그 시절은 그때의 나에게 너무 아리따웠어서 필요 이상으로 두렵다. 그때까지만이라도 미화된 게 아니라 네가 본리 선한 사람이었길, 오직 나를 위해서 바란다. 내가 또 괴로워하지 않기위해 바란다. 하지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속이며 그저 기억을 왜곡해서 바랜 색감을 떠올릴 뿐만. 그렇게 쓰라릴 때 가끔 떠올릴 뿐만. 그렇게 살아갈 뿐만. 마땅히 마음에 들지도 않았던 봄이라고 속일 뿐만. 안 그럼 못 버티니깐. 그 봄으로 끝을 내긴 또 싫으니깐. 어떻게든 살아내서 역겨운 숨을 의도치 않게 뱉고 내쉬며 매 봄을 마주해야 하는 나니깐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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